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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조문식입니다 ^ ^
조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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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2 06:00 문화


 인류의 역사는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이 싸움은 지난하게 이어진다. 시간이라는 틀이 상대성 속에서 움직이는 물리학의 법칙 내에 존재하는 하나의 움직임일지라도 이는 정해져있다고 생각했다. 사람과 사람, 다른 인종 사이에서도 시간은 늘 한정적이다. 한 사람의 인생을 시간이라는 틀 속에 채우는 것과 우겨넣는 것의 차이는 관점에 따른 외적 형상 정도로 여겼다. 나의 인생이라는 시간은 거대한 우주의 역사이자 인류의 가치관을 성장하는 과정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반대로 타인의 시간에 관대하지 못한 것이 지금에서야 이렇게 후회스러운 것은 마음이라는 비이성적 형태의 공간이 내게 주는 하나의 가르침이었다.

 내가 바라보는 세상 속에서 이는 새로운 법칙이었다. 특히 포괄적으로 성(性)에 대한 독자적 관념 형성에 중요한 방향으로 작용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이 같은 과정을 겪었을 수 있고, 생각했을 수 있다고 고민했다. 반대로 이를 불필요한 부분으로 여겨 그저 넘어갈 수 있고, 이 과정 자체를 필요치 않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다만 누구든 시간이라는 한정된 공간을 비틀며 살고 싶은 욕망이 있다. 이들은 물질에 기초한 그릇된 가치관으로 스스로를 포장해 자기합리화의 논리로 삼는 성향을 보인다고 결론지었다.

 내가 정할 직업은 배웠다는 자들이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법률에 속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렇다고 외적 존재로 치자면 지성 넘치는 사람들이 외치는 평등과는 거리가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내 시간 속에 같이 있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도 그렇다. 나는 그들에게 하나의 도구였고 그들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그 차이는 물질로 포장된 돈이라는 단위 속 개념이었다. 돈은 누구에게나 중요하다. 음식을 사고 잠자리를 찾는데 있어 돈은 수월하게 통하는 도구였다. 현대사회는 배금주의가 넘쳐났다. 내가 돈을 주면 상대방은 친절해졌다. 그리고 그들이 가진 음식과 잠자리를 내주었다.

 돈을 많이 지불할수록 내가 느끼는 만족감은 상대적으로 높아졌다. 그래서 돈이 필요했다. 하지만 누구 하나 나를 나무라지 않았다. 뒤에서 느껴지는 조롱이나 멸시는 그저 그들의 떳떳함을 포장하는 또 다른 도구였다. 나와는 다르다는 생각에서 그들은 윤리적이라고 느꼈던 것을 아직도 기억한다. 모든 것은 상대적인 것이다. 주변에 있는 다른 여자들보다 매력적인 여자는 종이라는 영역 속에서 새로운 적으로 간주되곤 했다. 한 사람의 쾌락과 이를 같이 겪는 다른 사람의 쾌락은 사랑이라는 말로 표현하기에는 저속하다고 생각했다. 쾌락을 같이 겪는 두 사람 사이에도 주와 종이 나눠졌고 이는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시간에게 그리 달가운 행위는 아니라는 생각이 늘었다.

 나는 스스로 똑똑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C라는 사람에게도 이런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하지만 내 시간을 단지 그의 쾌락을 위한 도구로 이용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었다. 마음속에 담은 나의 시간에 대한 생각을 털어놓는 과정 자체가 인생의 일부를 축내는 어려운 과정이라는 것은 시간을 제법 들인 후에야 이해할 수 있었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법이니까. 이는 단순히 어떤 일을 일찍 시작한다고 해서 더 빨리 이해할 수 있는 물리학의 법칙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머릿속 기억의 자물쇠처럼 시간과 공간에 대해서는 잘 챙기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회 속에서 그런 말들은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나에게 작지만, 너무나도 중요한 그 말은 학교에서 배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예의에 대한 내용으로도 읽은 적이 있었다. 나는 C가 나에게 한 마디 말을 해주기를 바랐다. 너는 자유라고.


1


 나는 원하는 대학교에 가기 위한 수능성적이 나오지 않아 처음으로 서울로 왔다. 한 재수학원에 등록한 나는 여기서 A를 처음 만났다. A는 나에게 있어 멋있는 아이였다. 조금 어두운 표정인 것과 대조적으로 A의 작은 얼굴은 높은 콧날과 짙은 눈썹으로 반 아이들에게 관심을 받았다. 인기가 많은 A는 이를 모르는지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을 잘 주지 않았다. 이런 A와 내가 친해진 과정은 지금도 잘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첫 수업이 있던 날 나는 습관적으로 족히 30분은 일찍 학원에 도착해 자리를 잡았다. A는 많은 자리 중에서 내 옆자리에 앉았다. 넓은 교실에 많은 자리가 있음에도 내 옆자리에 앉은 것을 두고 나는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자리는 여유로웠고, 첫날 수업은 그렇게 끝났다.

 이튿날에도 나는 다른 아이들보다 일찍 교실에 도착해 자리를 잡았다. 전날과 같은 자리였다. 넓은 교실의 각 부분도 하나둘 채워졌지만 역시 남은 자리는 제법 있었다. 조금 늦게 수업에 들어온 A는 다시 내 옆에 앉았다. 별다른 말은 없었다. 자리에 앉으며 나와 눈이 마주치자 A의 다문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여자인 내가 봐도 A는 눈에 띄게 멋있는 여학생이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처럼 혼자 점심을 먹었다. 시간의 중요성을 알기에 점심을 먹는 1시간도 허투루 보낼 수 없었다. 나는 서울로 오면서 근처 고시원에 방을 잡았다. 조금 허름한 곳이었지만, 밥과 기본적인 반찬이 나오는 곳이었다. 아침이면 나는 이곳에서 도시락을 만들어 학원으로 향했다. A가 옆자리에 있는 것은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점심식사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리면 나는 아침에 만들어온 간단한 도시락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언제부턴가 A도 자리를 지키며 샌드위치를 자주 먹었다.

 평일이 지나고 주말이 되면 나는 고시원 방에서 학원 강의를 복습했다. 그렇게 한 달이 흘렀다. 처음 서울에 왔을 때와는 달리 나는 혼자라는 외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A라는 아이는 처음처럼 내 옆에 앉아 수업을 들었다. 하지만 수업 이외에 별다른 이야기를 나눌 시간은 내게 없었다. 달력이 5월로 넘어갈 무렵 나는 서서히 지쳐갔다. 고향에 있는 부모님께 말할 수 없는 외로움이 이어졌다. 학원의 작은 창으로는 외부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이미 봄은 시작됐다. 두 달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 무렵 A는 내 자리로 자판기 커피 한 잔을 가져다줬다. 고마워. 내 짧은 인사에 A는 언제나처럼 입꼬리를 살짝 올려보였다. 이름이 뭐야. 내 첫 질문에 A는 나에게 휴대전화를 달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의 전화번호와 이름을 저장해줬다. 많은 아이들 중에서 나에게 주는 번호였다. 그렇게 우리는 친구가 된 것 같았다.

 그날부터 나는 A와 메시지로 채팅을 하게 됐다. 전부터 알던 사이는 아니었지만 대학 입시라는 같은 목표를 갖고 생활하게 됐고, 자연스럽게 친구사이로 발전했다고 느낀다. 그런 A는 부유한 집 아이였다. 그는 아버지가 서울에 있는 유명병원의 원장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도 재수를 위해 나처럼 집을 나와 작은 원룸에 살고 있다고 했다. A는 나에게 고시원을 나와 같이 살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나는 좋다고 답했다. 그해 6월 나는 A의 원룸에서 같이 살기 시작했다. 고향에 계신 부모님이 혹시나 걱정할까 싶어 잘 지내고 있다는 연락도 자주했다. A의 부모님은 그가 서울에 있는 좋은 대학교에 가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하지만 A는 나와 있는 시간을 좋아했다. 그렇게 우리는 학원수업이 끝나면 밖으로 돌며 함께 시간을 보냈다. 주말에는 같이 영화를 보거나 근교로 여행을 가면서 가까워졌다. 학원에서는 여여커플이 나왔다고 우리를 질투하는 아이들도 있었던 것 같다. A는 말수가 적었지만 반 아이들 모두가 좋아할만한 외모를 갖고 있었다.


2


 B 검사는 나의 서류로 보이는 종이 더미를 이리 저리 뒤적이고 있었다. 마치 범죄사실을 파악하지 못해 무엇이라도 잡으려는 사람 같았다. 그 가게는 어쩌다 가게 됐나요. B는 첫 질문으로 나에게 이렇게 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A와의 만남에서부터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B는 내가 말을 이어가려고 할 때마다 끼어들었다. 그런 사실은 없는데, 그런 사실은 없는데……. 그가 하는 말은 나의 말보다 우위에 있었다. 그는 내 말을 들으려는 의사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대학입시는 왜 포기했나요. B의 질문에 그만 웃어버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대학입시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별로 필요치 않았기 때문이라는 투로 말했다. B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더니 서류더미를 계속 넘기고 있었다. 그런 B의 모습이 너무나 서운하게 느껴졌다.

 당신은 대학입시를 포기하고 어른들을 만나 성매매를 했어. B는 나를 매섭게 몰아붙이면서도 겉으로는 정중한 척하는 행동을 하고 있었다. 배가 고프다고 하자 B는 나에게 설렁탕과 김치볶음밥 중에서 무엇을 먹을지 물었다. 나는 설렁탕을 먹고 싶다고 했다. B는 나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사무실 직원에게 설렁탕을 시켜주라고 말하고 자리를 떠났다. 설렁탕, 어렸을 때 어머니가 내준 곰탕이 생각났다. 나는 이유도 모른 채 검찰청 속 한 사무실의 구석에서 설렁탕으로 점심을 먹게 됐다. 1시간 정도 지나 돌아온 B는 다시 나를 꾸짖듯 목소리를 키우며 질문을 이어갔다. 왜 성매매를 했어. 아마도 B와 여기 직원들은 나를 매춘부로 만들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무서웠지만 다른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변호사를 데려다주세요. 내 말에 B는 잠시 고개를 들었다. 이번 사건에서는 당신도 성폭력 피해자일 수 있으니까……그래요. B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변호사를 불러달라는 말을 하고 기다리는 동안 A와의 기억이 조금씩 살아났다. 집을 나온 우리는 이곳저곳을 많이도 돌아다녔다. 밥값이 그렇게 많이 들것이란 생각은 왜 하지 못했을까. 하루는 서울의 한 골목을 지나고 있는데 나이 지긋한 아저씨가 말을 걸었다. 그는 우리 또래의 아이가 있다며 밥을 사주겠다고 했다. 그는 조금 구석진 식당이 있는 건물 2층으로 우리를 데려갔다. 하지만 그는 A를 흉기로 위협한 후 나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말했다. 그리고 A의 양손을 뒤로 묶어 집 안 가스관에 묶은 후 양말로 입을 막았다. 그는 흉기를 들고 나에게 가만있지 않으면 똑같이 할 것이라 위협한 후 나를 범했다. 그리고는 방구석에 놓인 플라스틱 병에든 물을 마셨다.

 그는 내 입을 벌려 그 물을 부었다. 술의 향이 풍겼다. 나는 그 진득한 냄새를 아직 잊을 수가 없다. 내가 힘을 잃고 쓰러지려고 하자 그는 술 붓기를 멈췄다. 그리고는 A에게로 등을 돌렸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우리는 한 골목 전신주에 등을 기댄 채 앉아있었다. 술 때문이었는지, 역겨운 냄새에 우리는 전신주를 붙잡고 토했다. 먹은 것이 없었던 탓에 그저 묽은 액체만 이어져 나왔다. 우리는 다시 돌아가고 싶었다. 치마는 흙탕물로 더럽혀졌고, 상의는 찢어져 볼만한 것이 못됐다. 근처 파출소로 달아났지만, 우리는 부모님의 마음이 걱정됐다. 파출소에서 쉼터라는 곳으로 자리를 옮겨 몇 가지 생체검사를 받았다. A의 어머니, 나의 어머니……근심 가득한 얼굴의 두 여자는 그곳으로 왔다. 급하게 이동했는지 그들의 모습 또한 단정하지는 않았다. 옛 생각을 하자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러던 중 변호사라는 사람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국선 변호사. 그는 나처럼 변호사를 고용할 처지가 못 될 경우 나서며, 정의를 위해 싸워준다고 말했다. 고맙다고 인사했지만 개운치 않았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을까. 나는 아직도 무엇이 문제인지 갈피를 잡기 힘들었다.


3


 그 사건이 있은 후 A와 나는 어른들의 눈을 피해 정말로 집을 나왔다. 우리는 미성년자와 성인의 영역 사이를 고민했다. 사회는 녹록치 않았다. 그렇게 집을 나선 첫날 잘 곳을 찾는 거리에서 우리는 한 아이를 만났다. 그는 자기 친구 집에서 하루 신세를 지라고 했다. 그럴 수 없다고 하자 그럼 같이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나 먹으며 이야기를 하지고 했다. 그때 나와 A는 돈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그 아이는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 아이는 나이보다 화장이 진해보였고, 지갑에 제법 많은 돈을 갖고 있었다. 우리가 함께 이동한 근처 햄버거 가게에서 그 아이는 햄버거와 콜라를 주문해줬다. 그 아이는 나와 A의 몫까지 같이 결재한 것으로 기억한다. 그 소녀는 햄버거를 먹으며 우리에게 좋은 제안이 있다고 했다. 우리에게 스마트폰을 줄 테니 현재 있는 위치를 인터넷에 올리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나와 A는 그 이유가 궁금했다. 우리가 결정을 내리지 못하자 그는 한 가지 질문을 했다. 집에 돌아갈 생각이냐. 나는 그럴 수 없을 것 같다며 말끝을 흐렸다. 다행일까. 그는 더 이상 나와 A를 붙잡지 않았다. 그 패스트푸드 가게에서 우리는 집으로 발길을 돌리는 것이 좋았을까. 나는 아직 그 공간의 시간을 생각하면서 나의 현재 시간을 보내곤 한다.

 나와 A는 그곳을 나와 홍대 근처 한 공원 벤치에 앉았다. 우리는 거기서 C를 만났다. 그는 자신이 기자라고 했다. 나는 C에게서 낭만이라는 감정을 느꼈던 것 같다. 삶에서 사랑만큼이나 낭만적 사고를 갈망하는 영역이 또 있을까. 나에게 낭만은 사랑이라는 착각을 느끼게 했던 C는 집을 나온 아이들을 취재하는 중이라고 했다. C를 보면서 나는 무언가 새로운 감정이 느껴졌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오는 뜨거움이라고 갈음하자…….

 언젠가 고민이 있었다. 꿈속에서 내가 그리던 이상형을 만난 것처럼 가슴 설레는 사람을 현실에서 만날 수는 없을까. 이성과 이상 사이에서 만나는 괴리감을 뛰어넘는 사랑의 위대함을 느껴본 사람이라면 혼돈 속에서 느끼는 사랑의 감정을 절대적인 것으로 인식하기 마련이라는 말에 가슴이 뛰었다. C는 대학을 갓 졸업하고 기자가 됐을 때 맛본 설레는 느낌이 좋았다고 했다. 하지만 이것도 현실과 이상 사이의 부조화였다며 나를 위로했다. C는 대학을 다닐 때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다고도 했다.

 그날은 바람이 매섭게 불었다. 나와 A, 그리고 C는 차가운 바람 속을 걸었다. 바람이 부니 거리가 쓸쓸히 비었다고 웃으며 함께 길을 걸었다. 우리는 따뜻한 카페에서 차를 마셨다. 그날은 무엇이 문제였을까. 언제나 꽃은 좋았다. 그 카페에도 꽃은 있었다. 창밖에도 마지막 날을 기다리는 마른 나뭇가지가 자그마한 잎들을 힘겹게 붙잡고 있었다. 꽃은 나처럼 힘든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힘을 주는 좋은 친구였다. 마침 자그마한 집을 사 마당에 예쁜 화원을 만들고 싶다는 꿈이 생겼던 기억도 떠올랐다. 나는 꽃의 아름다움이 좋았다. 하지만 생화는 숨을 쉴 수 없을지도 모른다. 나처럼 별 수 없는 아이에게 답답한 이 서울은 숨통을 점점 조여오고 있는 것이라 여겼다.

 그나마 숨을 쉬지 않아도, 물을 먹지 않아도, 햇살을 보지 않아도 멋지게 피어 있는 조화가 나와 닮은 것일 수 있다. 그 기억은 오늘도 꽃의 모습을 잊지 않게 하는 나의 시간이다. 한 가지 더, 조화를 보면서 이제 생기를 잃은 A를 생각하는 것도 이유다. 어엿한 아가씨로 그 누구보다 아름다웠을 A의 모습을 볼 수 없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슬픔은 단순한 감정의 선을 넘는 절대적 아픔을 함께 품고 있음을 느끼는 이런 날은 모질게도 더 그렇다. 내 마음속 한 부분을 잡고 있는 A는 슬픔을 넘어서는 아픔이 있고, 나와 A의 사랑 역시 그렇게 함께 하고 있다.


4


 B는 나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A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 나도 거기에 동조한 것이었을까. B의 말은 나의 말과 달랐다. B에게 할 말은 별로 없었다. 단지 나는 B라는 새로운 한 여자를 만난 것이다. 학원에서 같이 수업을 듣던 여자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스스로를 너무나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B라고 생각했다. 그 속에서도 나는 A의 모습을 찾았다. 오랜만에 맛보는 주말의 오찬을, 비록 설렁탕을 먹을지라도 사람이 있는 공간에 함께할 수 있어 좋았다. 하늘의 그녀도 이런 모습에 화내진 않을 것이다. 글쎄……. 사람이 살아가는데 사랑이 필요한 이유를 A도 잘 알고 있음은…….

 C는 세상을 자기중심적으로 말했던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C는 남자가 나이를 조금씩 먹어가고 점차 자기만의 생각하는 방식을 터득하면 어느 순간 남들과 조금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다고 느끼는 때가 찾아온다고 했다. 또 그저 하나인 줄로만 여기던 가족들과 친구들이 각자의 삶과 생활 영역, 가치관과 프라이버시가 있는 하나의 인간으로 다가오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담배 맛이 궁금했다. C는 나이가 들어서도 건강에 나쁜 담배는 절대로 배워선 안 된다는 충고도 잊지 않았다. 내쉴 때마다 미간이 찌푸려지는, 고통스러운 표정이었다. C는 해로운 존재를 태워 없앤다고 나에게 말했다.

 C는 나에게 어른이었다. 그는 지적인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담배는 어른과 아이의 경계를 상징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그 말에 나는 담배의 맛을 알게 됐다. 시간이 지나 담배의 쌉쌀한 맛에도 웃을 수 있게 된 것이 왠지 서글프기 때문이랄까. A의 죽음에 대한 소식과 C의 얼굴이 떠오르는 것은 나에게 담배 맛을 알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게 했다. 쓴맛을 즐겁게, 혹은 당연하게 인식하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다시 A를 만난다면 더 잘해줄 수 있을 텐데, 더 지켜줄 수 있을 텐데……. 내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지만, 그러면서 다시 담배 한 개비가 생각났다.

 그 사이에도 B는 수없이 많은 말을 했다. 질문이었겠지. 하지만 내가 가진 사고 속의 A와 C는 B의 말을 들을 여유를 주지 않았다. B가 없는 우리의 시간은 아름다웠다. C의 마음속 아픔이 크다는 사실을 알았고, 내가 치료할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이 들어서 기쁘기도 했다. 하지만, 왠지 모를 슬픔에 가슴이 너무 아팠다. 그저 이 남자가 좋다는 생각이었다. 그래, 논리적으로 설명하긴 힘들었지만 그냥 그랬다. 나는 B 역시 C가 아는 여자일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단지 C에게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용기가 없었다. C가 나를 좋아하게 될지, 사랑해줄지에 대한 것도 몰랐다는 것이 그 답이었다.

 나는 답답했다. 그럴수록 C가 더 좋아졌다. B는 나에게 진술서를 쓰라고 했다. 자기 고백을 적어. 그렇게 나를 다독이는 듯 말하는 B는 무엇인가를 알고 싶다는 눈치였다. 답답한 나의 마음을 C에게 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국선변호사 앞에 놓인 하얀 종이에 적기에는 별다른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C는 나에게 스테이크와 와인을 사주곤 했다. 그 이유를 이해하기란 힘들지만 좋은 의미였다고 느끼는 정도였다.

 나는 C가 좋았다. 또 그 역시 나처럼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앞으로는 내가 C의 아픈 마음을 채워주고 싶었다. A라는 존재가 없으면 나는 C와 완전히 함께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검찰청 한 공간에서 생각했다. 당신은 그저 건강하고 행복하게 생활하면 좋겠다고.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은 지금의 어려움을 넘어 더 멋질 것이라고. 나는 C라는 사람 마음의 일부가 되어 이 세상 모든 어려운 일을 함께 할 것이라는 하나의 의무감을 갖겠다고 마음먹은 것 같다.


5


 학원에서 수업을 받으며 가끔 A의 얼굴을 바라본 적이 있다. A는 수업에 별로 관심이 없는 아이라고 생각했다. 마치 나를 만나러 온 사람처럼 느껴졌다. 강사의 말을 적고 있을 때면 A는 하얀 수첩에 그림을 그렸다. 크지 않은 종이였지만 누군가 보길 바라는 눈치였다. 이미 여러 페이지를 넘긴 수첩에서 A는 다시 그림을 그렸다. 강사의 얼굴을 그린다고 생각했지만 한 시간 두 시간 지나는 동안 그 속에는 나와 닮은 사람이 들어찼다. 5월의 달력이 넘어가기 전에 A는 나에게 수첩 한 장을 찢어줬다. 그게 제일 나은 것 같아……. A는 수줍게 말했다. 나는 그런 모습에 그저 웃기만 했다. 오늘 저녁에는 어디가 좋을까. 나는 단지 질문을 한 것이었다. A의 시간과 나의 시간은 달랐다.

 A의 지갑에는 늘 돈이 제법 많이 들어있었다. 하지만 그 모습이 나는 슬펐다. 나에게 무언가를 전하려는 A는 그저 언제나처럼 나를 보채지 않았다. 이제 나를 믿는 것이었다. A가 처음으로 하얀 치아를 나에게 보였다. 나는 친구가 없어……. A는 수줍게 내게 말했다. 내가 바라본 A의 눈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슬픔이 가득 찬 눈은 언제나 거짓이 없다. 누군가의 책에서 읽은 것 같은 이런 말들이 지금 상황에서 필요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A가 그림을 그리는 동안 나는 하얀 종이에 글을 적었다. 이제 수업이나 복습보다는 A의 얼굴이 먼저 떠올랐다. 나와 A의 관계에 대해 생각했다. 글쎄……. 이런 생각이 법에 어긋나는 것은 아니었다. 물론 아니다. 다만 나의 시간을 침탈하는 이런 마음이 미래라는 시간에 대한 배신이라는 생각은 들었다.

 여름이 지난 하루, A는 우리가 함께하는 원룸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했다. 대학에 가면 친구들은 왜 연애를 하지 않느냐고 물을 것이라는 말이었다. 도도해 보이지만 마음은 여린 A 다운 생각이었다. A는 한번 사랑에 빠지면 그 남자에게 자신의 인생을 줄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멋진 남자가 청혼해온다면 좋겠다고 했다. 사실 이런 생각으로 살다보니 인생에서 제대로 된 연애경험이 없다고도 했다. A는 자기보다 큰 키에 곱상한 외모, 여자를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남자를 만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꼭 남자가 아니라도 좋다며 나에게 고백을 했다.

 우리는 같은 학교에서 수능을 다시 봤다. 어느덧 연말이었다. 나는 그저 마음 편하게 겨울을 보낼 수 있어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 A는 슬퍼보였다. 이번 성적이 별로일 것 같아 걱정이냐는 내 말에 A는 아니라고 했다. 나는 마음이 가벼웠다. 그저 즐겁기만 했던 것 같다. 나와 A는 집근처 마트를 찾았다. 언제나처럼 붐비는 이곳은 시간을 축내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제 우리도 진짜 어른처럼 살 수 있어. 나와 A는 마트에서 사온 맥주를 냉장고에 넣었다. 길에서 떡볶이를 사려다 그냥 마트에서 함께 사기로 한 밤이었다. 냉동떡볶이를 냉동실에 넣었다. 오랜만에 찾아온 한가함에 나는 들떴다. 나는 A와 함께 가볍게 샤워를 했다. 집에 있는 편한 운동복을 입고 머리에 수건을 걸친 우리는 창으로 보이는 하늘이 오늘따라 무척이나 맑다며 같이 웃었다. 달무리 사이로 스치는 달빛이 황홀했고 나는 담배를 피웠다. 그날도 A의 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텔레비전에서는 영화가 나오고 있었다. 그저 시간 죽이는 데는 액션영화가 제격이라는 A를 웃으며 바라봤다. 우리는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캔에 든 맥주를 마셨다. 크……. 시원하다. A는 마치 맥주 맛을 아는 아이처럼 말했다. 하지만 나는 혼자라는 생각이 스쳤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광화문의 인파 속에서 내가 안부를 전할 수 있는 사람과 함께 있고 싶었다. 하지만 A의 실망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사실 공부할 때는 돈이 아까워 밖에서 밥을 먹지 않을 때가 많았다. 배가 고파져 그저 담배를 물었다.


6


 B는 두툼한 종이더미를 들고 다시 들어왔다. 새로운 증인이 있어. B는 나의 생각을 의심하는 것 같았다. 그게 누군가요. 내 말은 B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너를 안다는 기자야. B는 무심하게 한 마디 걸쳤다. 나는 아직 범죄에 대한 혐의가 없을 텐데요……. 담배 한 대 태워도 되나요. 나의 말이 불친절하게 느껴졌는지 B의 미간에는 일자 주름이 새겨졌다. 그리고 더 이상의 말은 하지 않았다. B를 보면서 A의 모습이 생각났다. A는 담배가 해롭다며 끊으라고 말했다. 그때 함께 있던 원룸에서 담배를 피우면 A는 웃으며 멋있다고 했다. 하지만 나와 함께할 때 왜 담배가 필요하냐고 말했다.

 A와 함께일 때는 담배를 피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처럼 참았던 담배가, 하루에도 몇 번씩 끊겠다고 다짐하는 담배가 지금 이 순간에는 왜 이렇게 생각나는지……. 첫 입맞춤의 기억, 첫 포옹 그리고 첫사랑. 이 모든 것은 어쩌면 A와 함께했다. 마지막으로 시작되는 모든 것들도 A와 함께 하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믿었다. 한겨울 창밖의 차가운 바람이 내 몸의 온기를 가져가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 시간의 나는 먹먹한 가슴으로 새로운 시간을 맞이하는 것이다. 먼 곳에서 맞이하는 너의 시간이 나보다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이 깊게 자리했다.

 A와 나는 가끔 술을 마셨다. 우리는 술을 조금 많이 마셨던 것 같다. 젊으니까. 우리는 쓰린 속을 우유로 달래곤 했다. 언제나 지친 눈은 쉴 곳을 찾기 위해 창밖을 두리번거렸다. 담배에 불을 붙이는 순간이면 연기를 통해 보이는 하늘이 제법 아름다웠다. 우리 원룸에는 작은 조화 한 송이가 놓여있었다. A는 마술에 쓰는 꽃이라고 했다. 대학에 가면 남자친구에게 보여주려고 사서 배웠는데 이 마술을 나에게 보여줄 것이라며 라이터를 달라고 했던 아이다. A는 미술적 감각과는 달리 음악에 대한 평가에는 박했다. A는 이제 피아노 소리가 싫다고 했다.

 A는 의사인 아버지가 피아니스트인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그림을 그리던 A의 손가락은 피아노 건반 위 희고 가녀린 손가락을 생각나게 했다. 나는 A와 피아노 의자에 앉아 도란도란 재밌는 이야기를 나누는 상상을 했다. 건반을 제멋대로 두드리면서 장난을 치고 싶었다. 그렇게 행복한 시간을 보내면 왠지 피아노를 통해 서로의 감정을 열고 사랑을 속삭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 년 간의 행복. 12월 말의 이른 아침, 옆에 누운 A를 보며 나는 사랑이나 연애에 대한 생각 따윈 하지 않기로 했다. 오늘도 그저 나의 시간을 잡고 새로운 길을 찾을 뿐이었다.

 A는 성당에 다녔다. 연말을 맞아 나는 A와 손을 잡고 처음으로 성당이라는 공간에 갔다. 그곳에서 A는 여러 신부님들과 인사를 했다. 그날 이후 나는 A의 원룸을 나왔다. 성당에도 가지 않았다. A는 나에게 많은 전화를 했다. 그 중 일부는 받았고, 일부는 받지 않았다. 나는 A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고 싶지 않았다. 약속대로 시간을 충실하게 채우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여느 학생들처럼 학교에 다니고 남자를 사귀고 공부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여자들이 사랑을 하는 이유는 남자를 만나 편하게 살기 위해서라는 편향된 시각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들의 이면이나 생활패턴의 계기 따위는 생각하지 않은 채 A도 그저 그런 여자라고 생각한 것이 미안했다. 나는 결혼 역시도 사회적 제도가 갖는 나름의 문제를 안고 출발한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사실 이런 말을 하는 나 자신조차 막연한 사랑에 관대하지는 않았다. 현실에서 소문은 무서웠다. 여여커플의 여자가 현실로 들어온다는 것도 무섭게 느껴졌다. 현실에서 과거의 소문이 돌면 더 무서운 것이다. 인생이란 아이러니하다. 잠시 잘못된 길을, 아니 남들이 잘못된 길이라 말하는 경로를 거쳤다고 해서 인생의 종지부를 찍었다고 일컫는다.


7


 검찰청의 모습은 성당과는 다른 모습으로 경건했다. 이곳에서 A의 모습도 떠올랐다. 나는 남들보다 깨끗할까. 얼마나 경건하고 깨끗하게 살아왔을까. 저마다 고매하다고 일컫는 사람들이 모인 경건한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오늘도 민생과 정의를 외칠 것이고, 그들의 말을 들으면 서민들의 인생은 행복해질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오늘도 말한다. 정직하게 사는 사람이 잘 사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이런 말로 인생의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다시 B가 들어왔다. 그 옆에는 기자 C가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C는 나를 기억하는 듯 입꼬리를 살짝 올려 웃었다. 나는 가볍게 목례를 했다. C는 나에게 작은 목소리로 인사했다.

 나와 A가 잠시 방황하던 시절, C는 우리를 만나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아포리즘이 함축된 언어를 포장해 전했다. C는 오로지 돈과 권력이 지탱하는 시대에서 기자들의 정의가 담겼다는 뉴스가 아이러니하게도 진실만은 아니라고 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행하고 있는 것에 대한 공포를 가지게 마련이다. 나도 여기서 자유롭지는 않다. 손에 무기를 쥔 자가 들지 못한 것은 펜일까. C는 권력자들이 펜을 든 사람을 공격하는 것은 펜을 든 사람에게서 공포를 느꼈기 때문이라고 했다. 펜이 권력자들의 돈과 허세, 국민을 기만하는 사실이 알려지는 게 그들에게 아픔을 주기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사실을 알리고 진실을 밝히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하긴, 권력을 쥔 자들이 글의 공포를 생각했다는 것은 역사책에서 여럿 본 적이 있었다. 이런 자들이 권력을 가졌기에 사람의 마음을 돈으로 사고파는 것도 묵시될 수 있는 것이다.

 C를 보면서 인권이나 사회성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단지 사회를 이끌어가는 허울 속의 사람들이 존재함을 배웠다. 그들은 그저 권력을 유지하면서 즐기면 되는 것이었다. 권력이란 우리 눈에 보이는, 물리적 공간으로 진입하기 이전의 힘이기에. 권력이란 주변의 사람들이 부여하는 것이기에 국민들의 눈을 돌릴 공간이 필요할 뿐이었다. 나의 시간을 돌아보면서 인류의 지고지순한 대의보다는 인간 본연에 대한 이해가 먼저라고 생각했다. 누구나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고 인간답게 살지 않으면 안 된다. 사랑을 나눴다고 해서, 또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이라서 우리가 하나의 인격체로 인식되지 못한다면 어떨까. 겪지 않으면 안 되는 불행과 고통이라면 같이 겪어야 하고, 누려서 좋은 행복과 자유라면 함께 누릴 줄 알아야 하는 것인데. 그것은 단지 교과서적 답이었다.

 그런 면에서 A는 나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마치 야한 소설을 읽는 사람을 음흉하고 음란한 사람이라 단정 짓는 현실의 사회처럼. 우리는 각자가 은폐하고 있는 병적인 충동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현대인 중에서도 도시인들이 잘 정돈된 환경에서 깨끗한 척 살지만, 실로 깨끗한 것은 넓은 대지를 가꾸면서도 자식들에게 욕심 없는 자연의 삶을 가르칠 수 있는 촌부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내 마음 속은 C에 대한 의심이 늘어만 갔다. 그렇게 좋은 것 같았던 C의 이중성에서 마음이 아팠지만, 나름의 이유를 대면서 화를 삭여갔다.

 그런 C가 지금 내 앞에 다시 왔다. A는 어떤 의미에서 C에게 상처를 받았을까. 나는 A와 C에 대한 생각으로 마음이 복잡했다. C는 나와 A가 있는 원룸으로 취재를 오곤 했다. 나는 C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A는 그때도 너무나 친절한 아이였다. A는 C에게 지금 사는 집은 전세인데, 대학에 가면 이사를 가야할 것 같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C는 우리를 믿는다며 자신도 믿어달라고 했다. 마음이 힘든 날은 오늘처럼 이야기하자고 했다. C가 상대하는 사람 중에는 유명한 사람이 많다고 했다. 기자라는 직업은 인맥이 좋다고 했다. 자기는 다른 기자들과는 다르다고도 했다. 그런 면에서 C는 나와 A보다 큰 어른이었다.


8


 나는 당시를 생각했다. C는 나와 A를 한 식당에 데려갔다. 요리가 나왔고 나는 스테이크를 잘게 썰어 A에게 전했다. C는 그런 내 모습이 마냥 좋은 모양이었다. 우리와 먹는 스테이크가 더 맛있게 느껴진다고 했다. C가 우리에게 왜 그렇게 잘하는지 몰랐고 조금은 의심스럽기도 한 게 사실이었다. 그래봐야 나도 별 볼일 없는 재수생일 뿐이었다. 그저 알량한 공부를 한다는, 그나마도 A처럼 좋은 집안과 비교당하는 아이였다. 그래도 자존심 하나는 누구보다 높았다. 내가 바라보는 세상과 그에 대한 내 생각을 믿었다. C는 그런 내 생각을 좋아했다. 외적인 만족보다 나의 사람됨이 좋다고 했다.

 개인적으로 C의 외모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기에 내 외모가 별로냐고 물었던 것 같다. C는 그저 웃기만 했다. 그러면서 소심하다고 놀렸다. 우리의 첫 식사는 무척이나 즐거웠다. 다만 A의 생각을 간과한 것은 여전히 나의 마음을 아리게 한다. 나는 C와의 식사가 그저 아는 사람과 먹는 밥과는 사뭇 달랐다고 기억한다. A와 함께하는 자리보다 편했고, 그저 행복했다. C는 정말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어른이라는 것이 못내 아쉽긴 했다. 그렇다고 사귀자고 말하기에는 내 위치가 불안했다. 사회적 위치, 너무나 부족한 표현이었다.

 나는 그저 즐겁게 식사를 한 것으로 만족하고 그 이상의 관계는 훗날을 기약하겠다는 혼자만의 생각을 했다. 썩 아름다운 발상은 아니었지만, 함부로 상처를 주는 사람들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A와 C, 우리가 함께 나온 길거리는 여전히 냉랭한 바람으로 가득했다. 그렇게 보면 아직 새로운 시간이라 말하기는 일렀다.

 우리가 걷는 길에서도 수많은 눈길이 느껴졌다. 질투어린 남자의 시선들. 하긴, A는 내가 봐도 주변의 시선을 의식할만한 외모였다. 이런 질투의 시선은 나의 자존심을 괴롭혔다. 아름다운 여자가 자신과 함께 있으면 마치 그 여자를 소유한 것 같은 착각을 갖는 것이 남자의 욕망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귓불을 스치는 바람은 냉랭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길에서 A는 갑자기 모자를 썼다. A는 긴 생머리를 모자 속에 감췄고, 얼굴은 가려져 반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슬쩍 보이는 얼굴은 화장한 피부였다. 희고 보송한 피부, 그 겉을 덮은 약간 헐렁한 원피스도 A의 몸매를 가리지는 못했다. 일반적으로 마른 체형의 여자가 남자보다는 키가 커 보인다. 그래서일까, 걸으면서도 C와 나는 적당한 키 차이를 유지할 수 있었다. A도 그다지 큰 키가 아니었다. 하지만 A는 어떤 남자가 옆에 와도 어울릴 것처럼 아름다웠다. 처음 보는 사람 입장이라면 A와 C는 제법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조금은 먼 길을 함께 걸으면서 우리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C는 기자로서의 직분에 충실했다.

 C와 헤어져 돌아오는 길에 A는 이날 식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에게 했다. 나는 그저 웃었다. A는 이날 찾은 패밀리 레스토랑은 무척이나 분주했다고 말했다. 평소에도 가족과 종종 가는 곳이라며 좋은 가게라고도 했다. 나는 A에게 커피 한 잔을 마시자고 권했다. 근처 카페에 들어서자 A는 나를 구석자리로 이끌었다. 우리는 벽에 걸린 그림을 바라보고 앉았다. A는 내 옆에 꼭 붙어있었고, 모자를 벗어 내 옆에 놓아달라고 했다. 마치 연인처럼. 나는 이런 A의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하지만 지금도 뭐라 덧붙일 말은 없다. 그저 사람과 사람의 만남 속에서 우리는 그런 사이였다. 카페 창으로 보이는 겨울의 빛은 여느 때와 달리 차갑고 슬펐다. 하지만 A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마치 C라는 사람이 자기를 좋아하는 것으로 착각한 것처럼……. A는 그렇게 말했다. 나는 C가 좋았다. A도 그랬을 수 있겠지만 그건 나의 시간을 침해하는 행위였다.


9


 B는 C가 이번 검찰조사의 참고인이라고 했다. C는 나를 보며 가볍게 웃었지만 입꼬리만 살짝 움직였을 뿐 얼굴 전체는 근심으로 가득한 모습이었다. B는 C와 친해보였다. 나는 그런 둘의 모습이 썩 유쾌하지 않았다. B와 C는 나의 시간을 침해하는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이었다. C는 나와도 함께 시간을 보낸 사람이었다. 그날, A를 원룸으로 돌려보내고 담배를 피운다는 이유로 잠시 집을 나온 나는 C를 개인적으로 만났다. 이는 내가 가진 시간에 대한 자유의지였다. 하지만 지금 검찰에서 B는 이 부분도 문제의 하나로 몰고 가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B는 A의 자살 역시 내 행동의 결과라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C는 내 옆에 앉았다. 그 앞에서 B는 모니터를 노려보고 있었다. 가끔씩 자판을 치는 것을 보니 내부 통신망으로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래, 여기서 나는 B가 나와 C의 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기자인 C도 사실관계에 대한 진술을 통해 나를 보호하기 위해 이곳으로 온 것이라 여겼다. 나의 생각은 논리를 만들어내는 기초였다. 내 생각의 반을 진술서라는 글로 적고, 그 반을 적확하게 말로 답할 수 있으면 그뿐이었다. 나는 정직하다는 생각이 앞섰다. 그런 인식 속에서 C는 내 편이었다. 그런 나의 눈에 B의 눈이 닿았다. B는 가볍게 말했다. 더 하고 싶은 말은……. C는 나와 B를 번갈아가며 보고 있었다.

 이번 건은 왜 문제야……. C가 B에게 말을 걸었다. B는 C를 노려봤다. 당신이 더 잘 아는 일 아닌가……. B의 말에 C는 잠시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곧 얼굴을 들고 B를 바라봤다. 그리고 나에게 잠깐 얼굴을 돌렸다. 또 이내 다시 B를 바라봤다. 나는 이 아이들과 관계가 없어……. C는 그렇게 말했다. B는 나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또 C를 아느냐고 물었다. 나는 고민에 빠졌다. 정의를 지키기 위해 C는 기자로 남아야 했다. 나는 B에게 C의 취재가 있어 응한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C의 얼굴을 슬쩍 봤다. B는 탐탁지 않다는 표정이었지만 모니터를 바라보며 무언가를 적는듯했다.

 다시 B의 눈길이 나를 향했다. 고생했어요. B의 말에서 나는 비로소 다시 자유를 찾게 됐다고 생각했다. 검찰청이라는 곳을 나오면서 나는 C를 생각했다. 나는 C가 좋았고, 그렇게 C를 만났다. A의 자살은 나와 C의 관계에 대한 불만이었을까. 아니면 A 자신에 대한 불만이었을까. 그 소식을 곱씹는 것은 또 하나의 슬픈 일이지만, 내 마음에 아직은 열쇠가 없다. 그저 다시 C를 만날 수 있게 됐다는 생각에 나는 기쁠 뿐이다.

posted by 조문식